끄적끄적

PCEO 11기 3D 교육조교

Altius 2021. 7. 29. 00:54

21.07.23 ~ 21.07.28

어렸을 때 부터 매년 영재원 하나씩은 끼고 살았다. 경북대 과학영재 초등과정을 시작으로, 교대, 교육청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포스텍 영재기업인교육원에 정착하여 꽤 오랜 시간동안 교육을 받아 왔다. 그냥 과학에 흥미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지원했던 여러 영재원과는 달리, 이곳은 내게 말로 풀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안겨 줬다. 그냥 여러 사람들과 만나 프로젝트를 하고, 의견 공유하는 게 좋아서 입대 직전까지 심화과정 교육을 듣고 갈 정도로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육원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실 마지막 심화과정에 지원하기 전 9기 3D였던가? 조교 선발에 지원했었는데, 합격은 했지만 당시의 일들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던지라 전역 후에는 그냥 적당히 우리 기수 몇 명하고만 소통하며 담을 쌓고 지내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전역을 하게 됐고, 오랜만에 동우랑 술 한 잔 하다가 교육원에서 코로나 시대에 맞게 PCEO 페스티벌 대신 준비하는 네트워킹데이 기획단을 모집한다는 공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에 난 그 공지를 보고도 지원할 생각이 없었어서 그냥 읽고 넘겼었는데, 어쩌다 보니 박동우의 설득 끝에.. 결과적으로는 지원을 해서 합격을 했고, 기획단이 되어 한 달 반 정도 네트워킹데이를 준비했다.

근데 막상 준비하니까 또 재밌더라. 내가 기본과정 교육을 받을 때 계셨던 연구원 분들은 한 분 밖에 남아있지 않으셨지만, 새로 오신 분들도 좋은 분들이셨고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후배들을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동기부여도 되고 그렇더라. 6년이 지났는데도 한나쌤이 내 마지막 사업아이템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좀 감동이였다.

기획단은 다음 조교 선발 시 우선권이 있어서, 조교를 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사실 단기알바로 나쁘지 않긴 하지만 네트워킹데이 하면서 온라인 플랫폼 첨 써본 나에게는 그것도 큰 부담이더라. 나 입대할 땐 온라인 수업 없었는데... 이제는 거의 화석 기수가 돼 버려서 조교를 가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랑 일을 하게 될 까봐 그것도 걱정이였다.

고민 끝에 결국 지원을 했고, 당연히 합격이였다. 합격자 명단 보니까 나보다 높은 기수도 많아서 다행이였다ㅎㅎ.. 조교 사전과제 예시에 있는거 참고해서 캬누에서 30분만에 호다닥 끝냈는데 패스 떠서 기분 좋았다.

사전교육 당일이 돼서 포항으로 출장을 갔다. 대부분 포항역에서 만나서 택시를 같이 타고 왔는데 와 그 어색함;; 그나마 조교팀장이 5기라 다행이였다... 얼마 전 네트워킹데이때 국제관 와 보긴 했지만 숙박만 잠깐 하고 나가서 제대로 못 둘러 봤었는데, 소회의실까지 들어가서 짐 푸니까 새롭더라. 그리고 여기 편의점이 무인이다. 체크카드 꽂으면 잔액 검증하고 나서 문이 열리더라 개신기함.

누가 그러더라. 첫날 주는 도시락이 조교회의 하고 나서인지 그렇게 맛이 없었다고. 난 뭐.. 나쁘지 않게 잘 먹었다. 배고파서 그랬나.

둘쨋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중교육이 시작됐다. 조교 한 명 당 두 팀을 맡아서 진행했는데, 온라인이라 그런가 분위기를 풀기가 쉽지 않더라. 내가 맡은 한 팀은 서로 반말도 하고 사담도 조금씩 오가고 했는데 한 팀은 끝까지 존댓말 썼다..
언제나 그렇듯, 대단한 친구들이 많았다. 이미 모 영재고에 재학 중인 친구부터, 과학고 원서를 넣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였고, 벌써 그럴듯한 서비스 개발해서 운영하고 있는 친구 등등 얘들이 중3 고1이 맞나;; 내지는 내가 얘들을 멘토링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조교 하면서 학생들에게도 많이 배운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똑똑한 친구들이지만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보니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었고, 메인 강의때 프로젝트 출발이 "어쩌다 보니" 사라져 버려서ㅋㅋㅋㅋ 플젝을 진행하면서도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 과정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전반적인 진행 속도가 느려지는 것 같아서 헷갈려 하는 학생들이 있을 때 마다 내 사전과제도 보여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개념을 잡아 주면서 진행을 했다. 조교마다, 혹은 강사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달라서 헷갈리는 부분도 많았을 텐데 두 팀 모두 너무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

오랜만에 먹은 지곡회관 버거킹. 감튀가...음....너프당했다.

22시~23시쯤에 교육이 끝나면 조교 회의가 이어졌고, 조교 회의가 끝난 이후에야 조교들끼리 얘기도 좀 하고 놀 시간도 있었다. 하루는 지훈이형이 포항이 놀러왔대서 채은이랑 셋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이후 일정이 없대서 국제관에 그냥 데리고 들어왔다가 새벽까지 같이 놀다 갔다. 다른 조교들과는 서로 초면이였을텐데 생각보다 어울려서 잘 놀았다. 지훈이형은 수료 이후 첨 본 건데 반갑더라. 내가 컴교 냈으면 선후배 사이가 됐을까?

마지막 날 점심 먹다가 학생회관에 미끄럼틀이 있다길래 올라가 봤다. 생각보다 엄청 빠름; 잘못 타면 다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미진쌤은 커피 들고도 잘 타시더라ㅋㅋㅋㅋ

6년. 어쩌다 3D가 온라인 집중교육이 됐을까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7박 8일이였던 캠프가 4박 5일로 대폭 축소됐고, 마지막 날은 그냥 적당히 마무리만 하던 예전과는 달리 마지막 날 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발표를 준비하고.. 최종 발표까지 해야 하는 일정이였다. 내가 맡은 두 팀 모두 최종발표 아주 깔끔하게 잘 해 줘서 뿌듯했다. 발표 연습 때 내가 피드백 했던 부분이 모두 다 반영이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흠 잡을 곳 없는 발표였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너무 공개된 글이라 많은 정보를 담진 못하지만, 아쉽게도 우수 조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등수 차이가 크지 않아서 좀 더 아쉬웠던 것 같다. 하나라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PR해서(?) 베스트 팀워크 상을 줄 수 있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짧은 캠프기간 동안 교육생들에게 정이 들어 버렸다. 첫 조교였던지라 다른 조교들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였는데 믿고 잘 따라와 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오프라인 캠프와 다르게 온라인은 뭔가 화상회의 종료하고나면 그냥 뚝 끊어지는 느낌이라 끝나고 난 뒤에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
집에 와서 내 교육생들한테 짧막한 편지랑 기프티콘 하나씩 보내 줬다. 좀 늦은 시간에 보내긴 했는데 다들 피곤했었는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야 보고 답장이 오더라ㅋㅋㅋㅋ 기본과정 교육을 받을 떄 3D부터 제대로 흥미를 느꼈고, 배워가는 것도 많았던 것 같아서 이 친구들도 뭐든 하나를 얻어 갔으면 하는 마음에 제2의 팀원이 된 것 처럼 자세하게 피드백을 해 줬었는데 교육생들이 그런 부분들을 언급하면서 고생했다고 감사하다고 말해줘서 좋았다.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

반 정도는 금전적인 목적으로 지원한 교육조교였지만 교육생, 그리고 다른 조교들에게 일 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열심히 살면 번아웃이 오고, 열심히 놀면 현타가 오던 요즘같은 시기에 꽤나 큰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

막내조교의 말을 빌리자면, 이곳은 '힘들지만 즐겁고, 지치지만 행복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중학생 때 부터 교육원은 내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늘 쉽지 않은 곳이였다. 다만 에너지 드링크 몇 캔씩 마셔 가면서 밤을 세며 회의을 하고, 발표 준비를 하고, PPT를 만들고 나서의 그 성취감과 뿌듯함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 기본과정, 심화과정, 그리고 교육조교와 강사를 이루고 있지 않나 싶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고, 기수 간 네트워킹이 더욱 활발해져서 서로 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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